동아시아 신화

[한국 신화] 토지와 마을의 수호신 '서낭신(성황신)'

miracle HM 2024. 5. 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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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와 마을의 수호신 '서낭신(성황신)'

 


서낭신 혹은 성황신은 한국 신화에 나오는 토지와 마을의 수호여신이다. 대부분 여신이지만 일부 한 쌍의 여신과 남신이기도 하다. 마을의 수호신이자 경계신적 성격을 지니며, 전쟁수호신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돌무더기, 신수(성수라고도 하며, 신령이 깃들였다고 전해지는 나무), 이 둘이 복합된 경우신수 앞에 세워진 당집에 서낭신이 깃들여져 있다고 여겼으며, 서낭신을 모시는 신당을 서낭당 혹은 성황당이라고 부른다. 이 외에도, 서낭나무에 천 조각을 늘리거나 금빛 새끼줄과 장식을 달기도 하며 큰 바위를 ‘서낭바위’라고 하며 서낭신으로 모시거나 제를 지내기도 한다.

돌무더기는 외부 적에게 대항하기 위해 무기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서낭당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대부분 고갯마루나 한길 옆, 마을 어귀 등에 위치한다.

 

제주도의 서낭당

 

[서낭당의 형태는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 법]

 신수(서낭나무)에 잡석을 쌓아 올린 누석단이 있고, 이 신수에 백지나 청····녹색 등의 오색 비단 헝겊을 잡아맨 형태
 누석단만 있는 형태
 서낭나무에 백지나 5색 비단 헝겊 조각을 잡아맨 형태
 서낭나무와 당집이 함께 있는 형태
 입석(立石) 형태 등
 

 

 

기원과 역사

선왕당에서 이름이 기원했다고 보아 고대 한민족 고유의 신앙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고대의 마을간 경계를 표시하는 돌무더기에서 점차 경계신의 처소로 인식된 것으로 보며, 단군신화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한다.

 

중국 성황이 유입되어 형성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중국의 성황은 성읍을 수호하기 위해 둘레에 파놓은 못의 신으로 성읍의 수호신이다.

 

몽골오보로부터 전래되어 형성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오보란 흙이나 돌을 원추형으로 쌓아 올려 그 위에 버드나무 한 묶음을 꽂아두거나 목간을 세워 놓는 몽골의 신앙 형태이다. 여행의 안전을 빌며 돌을 던지거나 오색천을 묶거나, 돌무더기를 신의 거처로 인식해 제사를 올리는 점이 비슷하다. 이러한 돌무더기 형태의 제단은 시베리아 및 중국의 동북지역, 티베트 등의 지역에서도 발견되며 라마교 사원 내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몽골의 오보 - 우유, 술, 곡식 등을 뿌리며 시계방향으로 세 번씩 도는 풍습이 있다

 

우리 고유의 서낭 신앙이 중국이나 몽골에 있는 비슷한 신앙의 성격과 기능들이 서로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 시대에는 각 고을의 수령과 향리로 하여금 관내의 서낭신에게 제사 지내도록 제도화했다고 한다. 제사 비용인 위전을 지급하기도 하고, 전쟁에서 승리하면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몽골의 침략을 막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 서낭신에게 관직을 하사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성리학 통치 질서가 확립된 이후부터 서낭당과 그 제사를 금지했고 점차 민간신앙으로 정착했다. 근현대 가톨릭과 개신교가 들어오며 민속신앙은 더욱 탄압받았고, 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는 새마을운동에 미신 타파와 도시개발의 명목 등으로 각지의 서낭당이 숱하게 베여 나갔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민족문화 재흥이라는 정책으로 인해 미신으로 몰려 타파되었던 마을굿들이 부활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 때,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에 다양한 이념을 내세우기 위한 명분으로 이러한 전통문화들이 파괴되기도 했다.

 

 

실존 인물의 서낭신

해당 고을의 지방관이나 연고가 있는 인물이 죽은 후 그 사람을 서낭신으로 모시기도 했다. 유명한 강릉단오제는 '대관령국사성황'으로 모셔지는 신이 신라의 김유신 혹은 고승 범일이었다고 하고, 부여군 임천면에 소재한 가림성의 서낭신은 고려 시대의 명장 유금필이었다는 하며, 순천에서도 고려 초기의 인물인 김총을 '순천진례산성황'으로 모셨고, 의성에서는 견훤을 막아 싸우다 전사한 의성부 호족 홍술을 서낭신으로 모시기도 했다.

 

 

풍습과 지역적 특징

 

뱃고사를 지낼때 서낭기로 장식한 배

 

사람들이 서낭당 앞을 지날 때 돌 세 개를 얹고 세 번 절 한 다음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신이 있다. 돌을 던지거나 소유한 물건을 남기기도 했으며, 재수 뿐 아니라 질병과 불행을 방어하고 여행자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서낭당의 신수를 베거나 그 주위를 함부로 파거나 허는 것은 금기로 여겨졌다.

 

정기적으로 지내는 동제를 모실 때에는 서낭의 그림 앞에 제물, 분향, 절 등으로 제사를 지내고 서낭 소지를 올려 신이 잘 받았는지 확인하고, 그해의 신수를 알아보기도 한다. 서낭대에서 서낭굿이나 별신굿을 해 마을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동해안 지역에서는 외부 바다에서 들어온 서낭신도 있고, 삼척시 갈남서낭은 백호라고 여겨진다. 평안도의 서낭굿에서는 나라에 해를 주는 것을 밖으로 쫓아내는 내용이 연극적으로 연출되고 황해도 지역의 서낭은 지역수호신을 넘어 모든 일의 문과 길을 열어 나쁜 액을 막아주는 신으로 모신다. 어떤 무가에 따르면 서낭은 인간이 왕래하는 모든 길을 열어주면서 마을수호신이며, 산신의 하위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고도 한다.

 

강원도와 경상도, 동해안 지역에서 서낭신을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흔히 골매기서낭이라고 부른다. 보통 서낭신은 여서낭으로 설정된 경우가 많은데, 남서낭과 여서낭의 짝으로 설정된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 경우 풍요를 기원하는 결합 의례가 있고, 풍요신의 성격도 갖는다. 조상숭배 신앙과 결합하여 복합적 신앙 대상으로 변화한 사례이다. 탈춤에도 이 신격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바닷가에서는 배서낭을 섬기기도 한다. 배서낭은 항해의 안전과 풍어를 관장하는 신으로 배와 서낭이 합쳐진 명칭이다. 선왕(船王)으로 표기하는 걸 봐서 서낭과는 별개의 어원을 지닌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성격은 대체로 동일하다. 배서낭은 길지(길한 운수를 지닌 종이), 지방, 뱃기, 서낭단지, 서낭함을 모시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녀는 배가 침몰하는 것도 막아준다고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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