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여신(1)]
제주의 '영등할망'과 '감은장아기'
바람과 바다의 여신 '영등할망'
영남지역 또는 해안지역에서 모시는 풍신으로, 특히 제주 신화에서 바람과 바다, 어업의 여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등할망은 음력 2월 초하룻날 제주도에 들어와 바닷가를 돌면서 봄씨앗과 해산물들을 뿌려 어업과 농업을 풍요롭게 해준다고 한다. 그리고 25일에는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내방신(1년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 인간세계를 온다는 신)이다.
제주에서는 영등할망이 오는 2월을 ‘영등달’이라고 부를 만큼 유명하며, 여러 마을에서 이 신을 위해 영등굿을 벌이기도 한다. 영등할망은 외눈박이섬에서 온다고도 하고 강남천자국에서 온다고도 하며, 제주도에 왔을 때 바닷가를 돌면서 보말을 까먹으며 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2월에 보말 속이 비는 것은 신이 왔다는 증거라고 한다.
영등할망은 귀덕1리 포구를 통해 제주로 내려온다고 여겨졌는데, 그래서 이곳을 복과 덕이 들어오는 곳이라는 뜻으로 복덕개 포구라고 부른다. 이곳에는 현재 ‘영등할망 신화공원’이 있으며, 영등할망을 돕는 비를 관장하는 '영등우장', 영등할망의 바람 주머니에 씨앗과 봄 꽃씨를 담아주는 신인 ‘영등하르방', 영등할망이 오기까지 긴 겨울을 지키는 ‘영등대왕’을 바다를 배경으로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영등할망이 두터운 솜 외투를 입고 오면 그해 2월에 눈이 많이 오고, 허름한 차림으로 오면 유독 날씨가 좋다고 한다.
영등할망이 딸을 데리고 오면 바람이 불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비가 온다고 전승되는데, 영등할망이 제주에 오면 날씨가 험해지기 때문에 섬을 나갈 때까지는 배를 타고 나가서는 안되며 빨래를 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사람의 운명을 관장하는 여신 '감은장아기' 설화
감은장아기는 사람의 운명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사람의 길흉화복과 행운을 다루는 것으로 여겨졌다. 제주도에서는 감은장아기와 관련된 ‘삼공맞이’ 굿이 있으며, 이 굿은 집안의 가난을 모두 쫓아내고 부를 집안으로 불러온다고 한다.
행운과 불행으로 운수를 다루는 여신이지만 출신이 낮게 태어났다는 특징 때문에 수수한 소녀로 묘사되곤 한다. 자신의 가난한 모습을 보고 괴롭히는 사람에게는 불행을 주고, 친절한 사람에게는 금덩이를 주는 권선징악을 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된 설화는 다음과 같다.
먼 옛날 제주 윗마을에 사는 남자 거지와 아랫마을에 사는 여자 거지가 서로 품을 팔며 살다 세 딸을 낳았다. 큰딸이 태어나자 동네 사람들이 은그릇에 밥을 갖다 주어 은장아기, 둘째는 놋그릇에 갖다 주어 놋장아기, 셋째는 납박새기(나무 바가지)에 주어 감은장아기라고 이름지었다.
감은장아기가 태어난 후부터 집안이 잘살게 되었다. 비가 오는 어느날 부모가 세 딸들에게 누구 덕에 먹고 사느냐고 물었다. 첫째와 둘째는 하늘님(天)과 지에님(地), 그리고 부모님 덕이라고 대답했다. 막내인 감은장아기가 ‘자기 덕’에 먹고 산다고 말해 화가난 부모는 감은장아기를 쫓아내버렸다. 하지만 걱정이 된 부모는 두 딸을 보내 감은장아기를 데려오라고 했는데, 시기심이 든 두 언니는 막내에게 ‘부모가 너를 때려 죽이러 오니 빨리 나가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자 감은장아기는 도술을 부려 두 언니를 각각 지네와 말똥버섯으로 만들었다.
두 딸도 돌아오지 않자 걱정된 부모가 살피려고 밖으로 나오다 문지방에 부딪혀 걸려 넘어져 장님이 되었다. 그날부터 재산이 차츰 없어지고 마침내 다시 밥을 얻어먹으러 다니게 된다.
한편 감은장아기는 늙은 할망을 만나 초막살이 집에 하룻밤 묵게 된다. 감은장은 그 집 솥을 빌려 가져온 쌀로 밥을 지어 주인 식구에게 대접했다. 늙은 할망에게는 마를 캐고 먹고 사는 삼형제가 있었는데 가장 심성이 착한 막내와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 후 막내가 마를 캐다가 금덩이를 가득 발견했고, 부자가 된 감은장아기는 자신의 부모가 눈이 멀어 거지가 되어 떠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감은장아기는 석 달 열흘 동안 거지 잔치를 열었고, 잔치 마지막 날 부모와 만나게 되었다. 부모에게 옛날이야기를 청하자, 거지로 살다 세 딸을 낳고 부자로 살던 과거사를 들려준다. 눈물을 흘리며 듣고 있던 감은장아기가 자신이 막내딸임을 털어 놓자 부모는 놀라서 기적적으로 눈을 뜨게 되었다. 이후 감은장아기는 부모를 모시고 풍요롭게 잘 살았다고 한다.
이 여성신화 설화는 제주도의 큰 굿에서 부르는 무가의 내용이다. 출신이 낮게 태어나 높은 지위가 되는 서사구조가 「삼국사기」의 온달 설화와 「삼국유사」의 무왕 설화와 비슷하여, 신화, 전설, 민담으로 수용되면서 전승되었으리라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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