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신화

달마 대사(보디다르마) 전설과 설화 정리

miracle HM 2024. 4. 3. 02:10
반응형

달마 대사(보디다르마) 전설과 설화

 

달마도 by 김명국 (1639~1643년 사이 제작 추정)
달마도 by 김명국 (1639~1643년 사이 제작 추정)


보리달마 혹은 달마라고 불리기도 한다. 남인도 출신의 타밀인 승려이다. 보디다르마는 사람의 마음은 본래 선한데, 오랜 수련을 통해서 이를 깨달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전의 경전 중심의 교종 불교에서 참선*과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선종 불교를 주장한 것이다. 선종은 대승 불교의 한 갈래로 ‘열반으로 가는 데 필요한 것은 순수한 마음’이면 된다고 한다. 고대인도의 전통 무술을 중국으로 가져왔다는 설이 있으며, 소림사에서 수련해 깨달음을 얻었다고도 한다. 승려들의 건강을 위해 소림권을 창시했다는 설도 있다.


보디다르마는 남인도 팔라바국 왕자로 태어나 왕족이라는 지위에서 벗어나 불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 육조시대(220년~589년)**에 중국에 와서 선종을 포교했다. 일설에 따르면 보디다르마가 중국에 왔을 때 이미 100살이 넘었고 500살까지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보디다르마가 최초로 등장하는 문헌은 「낙양가람기」이며 이 문헌에 따르면 보디다르마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향했다고 한다. 보디다르마의 제자인 ‘담림’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보디다르마의 어록이 담긴 「이입사행론」에 따르면 보디다르마가 남인도 왕국의 셋째 아들이라고 한다.

 

300x250


* 참선: 마음이 자극이나 번뇌에 조건반사적으로 끌려 반응하지 않고, 가만히 놓아두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선정’이라고도 하며 ‘아나빠나사띠(안반수의)를 통해 유도되는 마음의 상태를 지칭한다. 아나빠나샤는 가부좌 자세로 앉아 호흡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는 모습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생각들을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수행법이다.

** 육조시대 (229년∼589년): 중국 통일 왕조 한이 망하고 수가 중국을 재통일하기 전까지의 전란의 시대이다. 육조시대에 포함된 나라는 삼국시대의 오나라, 동진 및 남북조시대의 송나라, 제나라, 양나라, 진나라가 존속했던 기간으로 한국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일본과 교류했다.

 


양나라 ‘무제’와의 야사

중국 남북조시대 양나라의 초대 황제인 ‘무제’가 고승인 보디다르마를 만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무제는 절을 중건하는 것에 국고의 재물과 힘을 쓴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며 자신의 공덕을 묻자, 보디다르마는 ‘무(無)’라고 한마디로 대답했다고 한다. 이는 외적인 공덕은 실제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내적 공덕과 비교할 수 없다는 의미이며, 공덕을 위해 공덕을 쌓지 말라는 가르침을 준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화가 난 무제는 보디다르마를 독살을 시도하지만 여섯 번째 겨우 성공한다. 보디다르마는 이를 알면서도 담담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무제는 보디다르마의 장례식을 치러주었고 웅이산에 유해를 묻었다. 하지만 3년 뒤 보디다르마는 멀쩡하게 살아나 신발 한 짝은 무덤에, 한 짝은 지팡이에 꿴 채 길을 떠났다고 한다. 이를 안 무제가 그를 추격하기 위해 사람들을 파견했지만 자신을 쫓아온 이들을 본 보디다르마는 갈대 잎 하나를 꺾어 수상스키를 타듯 강을 건너 서쪽(인도)으로 사라져버렸다. 

 


혜가대사와 보디다르마

달마에게 팔을 바치는 혜가대사 by 셋슈 (1496년 제작)
달마에게 팔을 바치는 혜가대사 by 셋슈 (1496년 제작)

 

혜가는 수나라의 선승이며 노자와 장자를 공부하고 마흔이 넘어 보디다르마의 제자가 되었다. 일화에 따르면 혜가는 중국 선종 1대조인 보디다르마의 제자가 되고 싶어 했다. 소림사를 찾아가 매일 법을 물었지만 보디다르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혜가는 보디다르마의 방문 밖에서 눈을 맞으며 날을 새웠다. 보디다르마는 거절의 의미로 붉은 눈이 내릴 때까지 그를 제자로 받지 않겠다고 하니, 혜가가 팔을 잘랐고, 상처에 흐른 피가 눈을 붉게 물들였다. 보디다르마가 입을 열기를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이 법을 구할 때 육신을 육신으로 보지 않았고 목숨을 목숨으로 보지 않았다. 네가 이제 팔을 끊었으니 법을 구할 만하다." 하며 혜가를 제자로 들였다고 한다.


어느 날 혜가는 불안한 마음을 편하게 하는 방법을 보디다르마에게 물었다. 그러자 보디다르마는 마음을 가져오라고 했다. 아무리 찾아서 마음을 찾을 수 없었던 혜가는 다시 보디다르마를 찾아가 마음을 못 찾았다고 고했다. 그러니 보디 다르마는 ‘나는 이미 너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는데 보았냐?’는 물음에 혜가는 깨달음을 얻었다. 

 


달마도 

 

보디다르마를 다룬 여러 내용들은 후대에 보충되거나 만들어진 이야기도 많고, 증거로 삼을 수 있는 정도의 기록들이 부족하다. 그의 기록들은 대부분 신화적인 허구성이 짙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종의 번성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사찰과 불교 신자들의 집을 포함하여 일반 가게나 가정에서도 달마도를 걸어 놓으면 좋은 기운을 받는다 해서 부적처럼 널리 쓰여오고 있다. 한국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이러한 달마도 문화가 존재한다. 일본 일부 지역에서는 달마를 칠복신(일본 민간신앙에서 숭배하는 복(福)신)의 하나로 포함하기도 한다.


보디다르마를 그린 ‘달마도’에서 보디다르마가 눈을 무섭게 부라리고 있다. 이는 수련을 하던 중 졸음을 이기기 위해 눈꺼풀을 잘라버렸다는 일화 때문이다. 보디다르마가 잘라낸 눈꺼풀이 차(茶)나무가 되었고, 그래서 차를 마시면 잠이 깬다는 전설이 있다. 또 어떤 이야기에 따르면 본래 보디다르마는 미남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길에 커다란 구렁이가 죽어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치우기 위해 유체 이탈을 한 사이 곤륜산(도교에서 신선이 살고 있다고 믿는 산)의 선인이 그의 몸을 차지해 버렸고 이후 모습이 바뀐 채 살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화가 김명국의 달마도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이미지이다. 이는 술을 좋아하는 김명신이 통신사행으로 일본으로 갔을 때 일본의 유력인사들이 마련한 연회에 대한 보답으로 선물한 그림이다. 김명국은 술에 취해야 신운에 가까운 그림을 그렸다 하여, 일본인들이 김명국에게 그림 한 점 받기 위해 연회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달마대사 관심론

보물 제 1915호 달마대사 관심론 목판

 

「달마대사 관심론」 은 달마가 전한 것으로 알려진 대승불교의 불경 중 하나이다. 달마는 선종의 창시자로 알려진 달마대사가 기록한 선종의 지침서이며,  심론에 대해 제자와 주고받은 문답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현재 한국에 전해진 「달마대사 관심론」은 고양 원각사에 단 한 권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개심사에 소장된 조선시대 쓰여진 「달마대사 관심론」의 목판은 제 1915호 보물로 지정되었다. 개심사 소장 판본에 남아 있는 ‘만력팔년경진사월일신간우가야산보원사(萬曆八年庚辰四月日新刊于伽耶山普願寺)’라는 기록을 통하여 본 유물이 본래 1580년 4월에 가야산 보원사에서 새로 간행한 판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목판은 불교사적, 서지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반응형